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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할 용기' 주요 어록2(저자 기시미 이치로)

준쓰 2021. 3. 14. 19:49

자신의 생각과 달리 상대에게 미움받지 않을 말을 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행동만을 한다면 그것은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내 탓'으로 여기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면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지적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미움받지는 않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둘의 관계는 개선되지 않는다.

 

불만이 있는 데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상대는 절대 알 수 없다. 그리고 상대가 알지 못한다면 그 말이나 행동은 변함없이 반복될 것이다.

 

질투라는 감정은 상대를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이 아닌 '소유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선택받지 못해서 절망하고 상처 입었다고 해서 상대방에게는 당신의 기대를 채워줄 의무가 없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연인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거 없이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거래이지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결혼으로 자유가 제한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같이 생활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결혼할 수 없다.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특정한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 혹은 질병으로 외모가 크게 달라져도 사랑하는 마음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만일 마음이 바뀌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둘러싼 조건에 끌린 것뿐이다.

 

태도의 변화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둘의 관계가 변화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같은 가치관, 비슷한 성격의 사람과 같이 산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배우자와 같이 살기 위해서는 가치관과 성격이 신경쓰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차이'에만 주목하게 되는 것은 그 차이를 관계 악화의 이유로 삼기 때문이다.

 

타입이 다르면 상대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새로운 것을 알아갈 수 있어서 오히려 재미있다. 또, 상대를 이해하려 하는 것은 꼭 그 사람의 생각에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직장에서의 자신, 친구 앞에서의 자신, 가정에서의 자신은 전부 똑같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든 똑같을 수는 없다.

 

가능성 안에서 살면 현실을 직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실제로 같이 살면 환상이 깨질 수 있고,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연애를 할때도 사랑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상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뿐이라면 결과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닌지, 손쉽게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닌지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정치나 사회적 제도에 의문이 들때는 철저히 따져 묻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실제로 부모들은 "너는 머리가 좋아서 공부만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안 하니"하는 식으로 말한다. 그래서 아이는 현실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가능성 안에서 사는 것을 선택한다.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는 타인의 과제에 간섭하고 간섭당하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은 어떤 때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그것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이다.

 

친구나 가족은 그 사람이 친구나 가족으로 '존재한다'는 자체가 전부다. 자신이 '존재하는'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그런 의미에서 공헌하는 것이다.

 

화를 대신할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면 화가 필요 없게 된다. "해줄래요?"하고 의문문으로 말하거나 "해주면 좋겠다"라고 가정문으로 말하면, 상대가 "싫다"라고 할 수 없도록 명령할 때보다 저항감이 적어진다.

 

자식을 걱정하는 한 당신은 자식에게 의존해서 살게 된다. 자식을 걱정하는 방식으로 의존하는 것 외에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걱정해도 자식의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지 말자고 결심한 것이다. 바로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기 위한 목적이다.

 

자신도 들으면 화날 만한 말을 자식에게도 하면 안된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인정받겠다는 생각뿐이다.

 

사람은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이곳에 있어도 된다'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주위 사람을 난처하게 해서라도 소속감을 얻으려 한다.

 

굳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자신이 한 행동에 주목을 받으려는 인정 욕구도 사라진다.

 

"나를 존경하라"라고 말한다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니면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라"라고 말해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사랑받을 수 없다.

 

부모든 누구든 타인이 당신을 사랑할지 말지는 당신이 결정할 수 없다.

 

과거에 매달려도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하기보다 어떤 형태로든 주위에 공헌할 수 있어야 노년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자신이 불리하다고 인식한 사람은 화를 내서 자신의 생각을 인정받으려 한다. 화를 내는 한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으로 대등한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당신이 주장해야 할 것을 주장하라.

 

가르치는 것도 관계가 좋아야만 이뤄질 수 있다. 야단을 쳐서 사이가 멀어진 다음에 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아들러가 트라우마를 부정한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힘든 경험을 하며 사는데 자신이 마주해야 할 과제에 대해 트라우마를 이유로 회피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야 주위를 챙기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